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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건강관리

모야모야병 초기 증상과 진단 과정, 나의 12년 이야기

by insogo 202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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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두통인 줄 알았고 다들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내 뇌혈관이 보내던 구조신호였다.

 





 



그날, 무언가 이상했다

2013년 여름. 여느 때처럼 퇴근하고 친구와 저녁 약속을 했던 날이었다.

좁은 인도 없는 도로를 걷는데 친구가 먼저 걷고 나는 뒤따랐다. 갑자기 친구가 돌아보며 말했다.

 

“너 왜 핸드폰 버리고 와?”

 

그제야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내 핸드폰을 봤다. 분명 손에 쥐고 있었던 기억인데, 언제 떨어뜨렸는지 몰랐다.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친구에게 주워달라 하고, 식당에 가서야 핸드폰을 손에 다시 쥘 수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뭔가 이상했지만 그냥 넘겼다.

 

너 왜 핸드폰을 버리고 와?

 

말이 어긋나던 전철 안

그로부터 보름쯤 뒤, 친구와 공항에 가는 전철을 탔다.
여름이라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사람이 별로 없는 전철 안 에어컨은 너무 세게 틀어져 있었다.
추워서 온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그런데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친구가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나는 분명 머리 속에서 문장을 다 만들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 밖으로는 엉켜버린 자음과 모음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약 30분 동안 그런 상태가 계속됐다.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요즘 이상해. 무서워. 꼭 병원 가봐.”

 

너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병원을 가기로 결심하다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 근처 큰 병원 신경과에 예약했다.
핸드폰을 떨어트린 증상을 말하니 처음에는 손목터널증후군인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전철 안에서의 언어장애 얘기를 하자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직장인이라 주말 밖에 시간이 없어 여름휴가를 병원 입원에 맞춰 썼다. 혼자 병원에 입원하고, 각종 검사들을 받았다.
MRI는 입원 이틀째 밤에야 찍을 수 있었다.

 

셋째 날 새벽, 주치의가 와서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아침을 먹을 무렵 다시 나타난 주치의는 “혈관이 좁아져 있다”라고 말했고,

한 시간 뒤에는 “모야모야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시간 후, “모야모야병이 맞다”고 했다.

한 시간 마다 바뀌는 주치의의 말에 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괜찮아요. > 혈관이 좁아져있네요. > 모야모야 같아요. > 모야모야입니다.....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모야모야병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주치의는 “뇌혈관이 점점 좁아지는 겁니다”라고 짧게 대답하고 병실을 나갔다.




혼자였던 병실, 검색창을 붙잡다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을 붙잡고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희귀 질병’
‘뇌혈관이 좁아지는 병’
‘점점 막히다가 뇌경색,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음’
‘수술로 대응 가능하나 완치는 없음’

단어 하나하나가 충격이었다. 부모님은 지방에 계셨고, 병실엔 나 혼자였다.
결국 퇴원 후 원룸에 돌아와서야 엄마에게 전화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야모야라는 병 이래… 내가 찾아봤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야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교수님이 알려준 조심해야 할 것들

일주일 후 외래로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모야모야 확진.

 

내가 물을 수 있었던 건 단 두 가지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리고 "제가 뭘 조심해야 하나요?"

교수님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모야모야는 신경외과 영역이니, 치료는 그쪽에서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조심할 것은..."

 

그 리스트가 참 길었다.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기, 몸이 너무 더워지지 않게 하기, 너무 차갑게 하지 않기, 뜨거운 음식 피하기,
찬 음식 피하기, 높은음으로 된 노래 부르지 않기, 심한 운동 하지 않기, 과하게 울지 않기, 헐떡일 만큼 숨찬 모든 일 피하기...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평소에 즐기던 거의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걸.

 

운동을 좋아해서 얼마 전엔 복싱을 시작했었고,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뜨겁거나 차가운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다.

 

그 모든 게 이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절망스러웠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요것도 안되고...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진단 확인을 위해 더 많은 병원으로

“병은 한 군데서만 보지 말고, 여러 군데서 확인하라.”

 

주변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 서울 내 몇몇 상급병원에 예약을 걸었다. 다만 상급 병원은 한 달 이상 대기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려 방문한 세 군데 병원 모두 똑같이 말했다. “모야모야병 맞습니다.”

 

하지만 치료 접근 방식은 달랐다.

 

  • 병원 A: 예방적 수술을 한쪽만 먼저 하자.
  • 병원 B: 양쪽 다 수술하자.
  • 병원 C: 조영술 없이는 판단할 수 없다.

마지막 병원에서 조영술을 받기로 했다. 대퇴부에 국소마취를 하고 카테터를 넣어 머리까지 올렸다.
마취는 국소뿐이어서 관이 왼쪽 목에서 몇 번이나 걸려 재시도하면서 통과할 때의 느낌,

조영제가 퍼지는 순간 뜨끈뜨끈한 온도와 얼굴이 저릿저릿해지는 감각이 생생했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혈관조영술은 다신 하고 싶지 않아.

 

조영술 후, 엄마가 대퇴부에 올린 모래주머니를 세 시간 넘게 눌러주었다. 당연히 그 시간 동안 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과는 “초기 단계.” 수술은 아직 필요 없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다시 혼자가 아닌 일상으로

몇 개월 전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아빠의 설득으로 서울 집을 처분하고 지방으로 내려가셨던 부모님은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내가 처음 모야모야 진단받고 전화 통화 한 이후부터 엄마는 단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했다.
매일 출, 퇴근 중에 생존신고를 위해 통화를 할 땐 너무 멀쩡한 목소리로 통화했었는데 말이다.
잠시 혼자 살던 난 다시 부모님과 일상을 공유하게 되었다.

 

1인 가족에서 다시 3인 가족으로.




“과하게 울면 안 됩니다.” 진짜였다

초반에는 정말 많이 울었다. 출근 준비로 세수하면서 울고 퇴근 후에도 울고, 혼자 있을 때마다 울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과하게 울다가 점점 손에 마비가 왔다. 닭발처럼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심한 두통이 오래 지속됐다.
알고 보니 과호흡으로 인해 뇌혈류가 줄어든 결과였다.

그 후로는 우는 것도 조심하게 됐다. 지금은 그저 눈물만 조용히 흘릴 뿐이다.

 

심하게 울면 손에 마비가 왔다.



회사, 퇴사, 그리고 2년의 공백

그 해, 결국 회사에 말하고 퇴사했다. 솔직히 말했다. “모야모야병이다. 당분간 쉬고 싶다.”

과장은 “나도 두통 심해~”라고 했다.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무시당한 느낌보다, 서러웠다.

 

2년 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평일에 늘어지게 잠도 자봤다.
친구와 처음으로 여행을 갔다.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에 다양한 공예도 배웠다.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무섭다

진단을 받은 후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추적 검사를 하고 있다. 병 진행 여부와 그동안의 증상으로 수술 여부를 판단했다.
그리고 아직 수술을 하지 않았다. 그저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하루 한 알의 약으로 지내고 있다.

 

 

담당 교수님은 한 번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초기엔 보통 그런 증상이 안 나오는데.. 지금은 그런 증상 없어요?"
초기라던 그 시기에 난 왜 허혈증상이 왔던 걸까? 내 몸에서 빨리 발견해 달라고 그랬던 걸까?

 

지금은 결혼으로 지방에 내려와 병원도 옮겼다. 며칠 전 이관 진료를 받고 MRI 예약을 잡았다.
10월 22일,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여전히 큰 증상은 없다.

 

두통은 자주 있다. 하지만 두통은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모야모야가 아니어도 정말 많고 다양한 원인이 있으니까.

난 아직도 잘 운다. 조금만 울어도 머리 전체가 저릿저릿하다. 아직도 이 저릿함이 모야모야 때문인지도 잘 모르겠다.

위 증상은 진료 때 얘기해도 담당 교수님들은 큰 증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몸 어딘가에서 순간 힘이 빠져야 한다.

 

 

가끔 궁금하다. 도대체 언제부터일까?
졸업 후 근무 당시 밤마다 극심한 두통에 밤잠 설치고 얼음팩을 끼고 살던 그 시기였을까?
대학 동아리 MT에서 게임하다 머리를 바닥에 심하게 부딪히고 기억을 잃은 그날일까?
어렸을 때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힌 날일까?
서서 그네를 타다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머리를 꿰맨 그날일까?
원래부터 내 몸에 있었던 걸까?
모르겠다. 아마 평생 모를 것 같다.

 




모야모야병은 나에게 많은 걸 빼앗아 갔지만,
나를 더 단련하는 시간도 함께 줬다.
나는 여전히 무섭지만,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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